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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장일순 사상 연구

운 산 2013. 10. 10. 23:09


장일순 사상 연구

장일순의 생명사상과 한살림운동

: ‘대안적 삶을 모색하는 사회운동의 철학적 기초’ 연구를 위하여

권 형 택(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사료관 연구위원)

 

- 들어가며

 

한국사회에서 탈근대적 대안사회를 모색하는 사회운동의 역사는 생각보다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그런 대안사회운동의 시작을 언제로 볼 것인가는 연구자에 따라 견해의 차이가 있겠지만 대체로 1985년 원주에서 시작한 최초의 도농직거래 공동체운동 협동조합 <원주소비자협동조합(현 원주한살림)>의 창립으로 보는 것이 무난하지 않을까 생각된다.

 

물론 한국사회의 모순을 근본적으로 해결하고자 하는 사회운동은 그 훨씬 이전부터 다양한 형태로 전개되어 왔다. 그러나 그 이전까지는 보수적이던 진보적이던 대부분의 사회운동이 성장주의적이고 물질주의적인 근대적 패러다임을 벗어나지 못했거나 또는 오히려 종교적, 정신주의적 신비주의에 빠지는 한계를 가졌다고 보인다. <원주소협>은 장일순 선생을 중심으로 김지하, 박재일 등 이른바 원주캠프의 7-8년에 걸친 새로운 운동방향의 모색의 결과였는데, 이것은 그 후 1989년 <한살림모임>의 창립과 ‘한살림선언’의 발표로 이어지는 한살림운동으로 발전한다.

 

근대 자본주의 모순을 극복하기 위해 탄생한 서구의 사회주의운동은 마르크스/레닌주의를 철학적 기초로 하면서 러시아혁명과 중국혁명으로 러시아와 중국에 사회주의 정권을 수립하였고, 이후 20세기 중반에 이르면 전 세계 피압박 민중들의 해방의 복음으로 전파되기에 이른다. 그리하여 이차대전 이후 수많은 신생독립국들에 사회주의 정권이 들어섰고, 이에 대한 미국을 중심으로 한 자본주의 강대국의 반격으로 동서냉전시대로 접어 든다.

 

한반도에서는 바로 이 시기에 일제 식민지로부터의 해방과 분단, 6.25 한국전쟁이라는 엄청난 역사적 시련을 경험한다. 그러나 서구의 사회주의운동은 1968년 ‘6.8혁명’을 정점으로 하여 그 한계를 노정하는데, 이 때 사회주의 운동가들 사이에서 새로운 운동방향에 대한 모색이 일어난다. 한국사회 선각적인 지식인들 사이에서도 이러한 서구의 사상적 흐름으로부터 일정한 영향을 받았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한반도에 있어서는 남북분단과 첨예한 군사적 대립이라는 냉전적 상황이 워낙 압도적인 지배적 조건이 되어 있었기 때문에 새로운 방향모색은 지체될 수 밖에 없었다. 그래서 군사독재정권에 대항하는 줄기찬 민주화운동 과정이 있었지만 그 속에서 새로운 운동방향의 모색은 서구에 비해 상대적으로 좀더 어려운 조건 하에 놓여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1970-80년대 민주화운동가들이 대체로 운동의 철학적 기초를 마르크스 레닌주의의 혁명사상과 계급투쟁론에서 찾았던 것은 이런 한국의 특수한 상황적 조건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70년대 후반 암울한 유신독재 체제 하에서 장일순에 의해 제기되고 김지하 시인이 받아 발전시킨 생명사상은 그러한 전반적인 상황에 비추어 보면 다소 특별한 의미가 있다. 이 당시 ‘생명운동’은 반독재투쟁전선을 교란한다는 비판도 받았고, 가농 등 가톨릭 중심으로 일정한 영향을 미쳤으나 대세를 이루지는 못했던 것 같다. 그러나 장일순의 생명사상은 민주화운동의 지도적 인사들에게 큰 영향을 주었고, 이후 민주화운동사의 한 획을 긋는 중요한 역할을 했던 것은 틀림없다.

 

2008년 세계적인 금융위기를 고비로 하여 미국을 정점으로 한 신자유주의 자유시장 지배체제는 결정적인 퇴조국면에 들어섰다. 1980년대부터 동서냉전의 균형이 무너지고 20세기 마지막 10년 동안 소련과 동구의 사회주의 정권이 붕괴할 때만 해도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는 피할 수 없는 인류 역사의 대세로서 영속할 것처럼 보였다.

 

그러던 것이 불과 10여년 만에 새로운 전환의 국면으로 들어선 것이다. ‘붕괴한’ 사회주의 체제와 함께 자본주의체제 역시 이제 ‘퇴조하는’ 역사적 국면에 들어선 것이다. 이러한 전환기적 역사국면은 필연적으로 대안적 세계에 대한 관심과 열정을 전세계적으로 불러일으켰다. 한국사회에서도 1997년 IMF체제를 기점으로 하여 전면화된 신자유주의 경제체제가 미국발 세계금융 위기로 큰 타격을 받으면서 향후 한국사회발전의 방향을 둘러싼 담론이 활발해졌다. ‘복지국가론’, ‘2013년체제론’ 등이 그 한 예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러나 좀더 차분히 민주화운동사를 되돌이켜보면 아직도 우리는 60-70년대 제기되었던 민주주의와 통일의 담론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이제 21세기의 확대된 지평 속에서, 그리고 1987년 6월항쟁 이후 비약적으로 성장한 우리 국민의 민주역량 속에서 우리 역시 민주주의의 질적 심화와 더불어 질적으로 고양된 새로운 삶을 모색하는 단계에 들어섰다.

위기 속에서 전환기를 맞은 세계, 거기에 남북분단이라는 특수조건이 덧씌워진 한반도의 상황 속에서, 당면한 위기상황을 극복하고 대안적 삶을 모색하는 사회운동이 부각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인 것 같다. 그리고 그러한 대안사회운동은 실제로 다기다양한 흐름을 형성하면서 꾸준히 확대되어 왔다.

 

그런데 대안사회를 모색하는 운동들, 예컨대 환경운동, 여성운동, 생명공동체운동, 종교적 영성운동 등 우리 사회의 다양한 운동의 줄기를 따라 올라가다 보면 필연적으로 장일순에서 시작한 원주의 생명운동, 한살림운동을 만나게 된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현재 한국사회에서 일어나는 대안사회운동이 모두 장일순에서 시작되었다는 것은 아니다. 다만 장일순의 생명사상이 한국사회 대안사회운동에 미친 영향이 매우 크고, 따라서 한국 사회운동의 발전과 미래를 전망하기 위해서는 장일순의 사상을 반드시 연구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본인의 능력의 한계와 시간적 제약으로 본고에서는 장일순 사상에 대한 아주 거친 스케치를 제시하는 수준에 그칠 것이다. 그러나 어쨌든 대안적 삶을 모색하는 사회운동의 저류에 흐르는 철학적 기초로서 장일순사상의 연구는 앞으로 중요성을 더해갈 것은 틀림없다. 그러한 연구는 학술적으로 중요할 뿐만 아니라 운동적 측면에서도 현재의 다기다양한 운동의 흐름을 묶어주고 더욱 큰 흐름으로 발전시키기 위한 중요한 디딤돌이 될 것이다.

 

1. 장일순의 생명사상

장일순은 생전에 스스로 책을 쓴 적이 없고 또 쓰려고도 하지 않았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아마도 어떤 좋은 생각과 뜻이 문자로 표현되었을 때 문자가 가지는 한정적 속성으로 말미암아 진리에 대한 구속으로 작용하는 것을 우려했던 것 같다.

 

그래서 장일순에 관한 책이 여러 종 출판되었지만 대개 강연이나 대담을 기록한 것들이거나 그의 서화와 관련된 것들이 대부분이다. 장일순 관련 책들 중에서도 장일순의 사상을 비교적 총체적으로 볼 수 있는 것은 1997년 녹색평론사에서 간행한 『나락 한알 속의 우주』와 2003년 삼인 출판사에서 간행한 이현주 목사와의 대담집 『무위당 장일순의 노자이야기』 정도인 것 같다. 여기에서는 우선 장일순의 사회적 실천 속에서 발언한 말들과 짧은 글을 모은 『나락 한알 속의 우주』를 중심으로 그의 생명사상의 개요를 그려보고자 한다.(앞으로 특별히 주가 없는 인용은 모두 『나락 한알 속의 우주』에서 인용한 것임)

 

가. 생명에 대하여

장일순에게 생명은 무엇이었나?

 

장일순은 한 대담에서 이렇게 말한다.(1992. 6. 11 MBC TV) “우리같은 서투른 사람한테 ‘생명이 뭐냐’ 하면 ‘몰라’ 하는 게 정답이라구. 어떻게 말로 글로 얘기할 수 있어요? 배 맛이 이렇다 저렇다 하고 말로 얘기하는 것하고 같은 거지. 각자가 소화시켜 나가는 수 밖에 없어요.” 그러면서 또 이렇게 말한다. “생명이란 보이지도 만질 수도 냄새 맡을 수도 있는 것은 아니지만 , 그렇지만 분명히 있단 말이지. 그 덕에 모든 것이 살아가니까.” 생명은 보이지도 만질 수도 없는, 그러나 분명히 있는 어떤 것이라고 한다.

 

그 어떤 것의 속성은 어떠한가? “생명은 하나이고, 절대이고 그 누구도 함부로 못하는 것이고, 오직 눈에 보이지 않는 하느님의 권능이요, 그분 자체”라고 한다.(『새벽』143호)그리고 “무소부재(無所不在) 무시무종(無始無終)한 하나님”이라고 말한다. 그래서 “생명의 세계는 영원한 것이다.”라고 말한다. 생명은 유일하고, 절대이며 영원한 것, 즉 하나님이다. 그리고 “내 안에 아버지 계시고 아버지 안에 내가 있다.”고 하여 하나님, 곧 생명이 인간과 하나임을 말한다.

 

장일순의 생명은 동학에서 해월 최시형 선생이 말하는 ‘한울’이다. 해월은 “한울이 한울을 먹는다(以天食天).”라고 하면서 “일체의 존재는 하늘과 땅, 우주와 분리해서 이야기할 수 없다고.” 말한다. 그런 점에서 일체 중생, 나아가 풀, 벌레, 무생물인 돌까지도 동격이고 동가이며 그래서 생명은 모두 평등하고 어느 하나도 소홀히 다룰 수 없다고 말한다. 그래서 인간과 모든 생물, 무생물까지도 공생해야 하는 것이고, 인간이 인간만을 위해 자연을 착취하고 훼손하는 것은 이러한 생명의 윤리에 반하는 것이라는 것이다.

 

이 말들을 종합하면 장일순이 말하는 생명은 ‘뭐라 말로 표현할 수 없지만 이 세상에 분명히 있는 어떤 것, 이 우주에 존재하는 모든 것이면서 서로 의존하면서 존재하는 일체의 것, 서로 평등하고 공생하는 절대적이고 영원한 것, 즉 하나님(한울님)’을 의미한다.

 

나. 모심에 대하여

생명사상에서 중요한 키워드가 ‘모심’이다.

 

세상 만물에 모두 생명이 깃들어 있으니 그것을 소중히 ‘모시는’ 것은 당연하다. 그래서 장일순은 “나락 한알 속에도, 아주 작다고 하는 머리털 하나 속에도 우주의 존재가 내포되어 있다.”라고 하면서 생명의 세계에는 귀천대소(貴賤大小)가 없음을 강조한다. ‘모심’이라는 용어는 동학의 교리에서 유래하는데 모심侍이란 말뜻 그대로 ‘극진히 받드는 것’이다. 동경대전에서는 해월의 ‘천지만물 막비시천주야(天地萬物 莫非侍天主也)’ ‘하늘과 땅과 세상의 돌이나 풀이나 벌레나 모두가 한울님을 모시지 않은 것이 없다’라는 말씀을 들어 모심을 말한다.

 

세상만물 모두에 생명이 깃들어 있기 때문에 어느 것 하나도 소홀히 대접해서는 안되고 극진히 받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해월 선생의 “시(侍)는 무위이화(無爲而化)다.”라는 말씀이나 ‘시천주조화정(侍天主造化定)’라는 말에서 모심의 의미를 좀더 구체적으로 볼 수 있다. 즉 시란 우주가 본원적으로 가지는 이치를 깨달아 거기에 동참하는 것(無爲而化)이고, 우주 만물을 지극히 모실 때 만물이 평안하고 안정된다는 것(侍天主造化定)이다.

 

생명이 장일순사상의 존재론이라고 한다면 모심은 장일순사상의 실천론이다. 장일순은 ‘생명의 모심’이 모든 사회적 실천의 가장 중요한 기준이라고 보았다. 그래서 모든 사회운동은 생명을 모시는 운동이어야 하고, 과학 역시 생명을 모시는 과학이 되어야 한다고 보았다.

 

그러면 일상생활에서 모심을 실천하는 것은 어떤 것일까? “자기가 타고난 성품대로 물가에 피는 꽃이면 물가에 피는 꽃대로, 돌이 놓여있을 자리면 돌이 놓여있을 만큼의 자리에서 자기 몫을 다하고 가면 모시는 것을 다하는 것이라고 저는 생각해요.” 타고난 성품대로 자기 몫을 다하는 것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여기에는 한 가지 전제가 있다. 곧 천지만물의 근원, 즉 생명에 대한 깨달음이다. 그래서 그는 이 강연에서 이렇게 말한다. “제가 이 자리에서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천지자연의 원칙대로 그 돌아감을 깨닫고 이해하면서 그것에 맞춰서 생활에 동참하는 것, 그 속에서 일을 처리해 나갈 때 .... 시(侍)의 틀 속에서 생활하고 나아간단 말이지요.”

장일순의 ‘생명을 모시는’ 실천활동은 장일순을 따르는 원주의 활동가들의 오랜 공부와 논의를 거쳐 한살림운동으로 구체화된다.

 

다. 한살림과 한살림운동

한살림이란 말 그대로 우주 만물 속에 깃들어 있는 한(생명)을 모시고 기르는 것, 살리는 것을 의미한다. 이 한은 하나이면서 전체이고, 나 자신이면서 상대방이고 우주자연이기 때문에, 이 한살림은 인간을 살리고, 모든 생물과 우주만물을 살리는 이념, 곧 생명의 이념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면 왜 한살림인가?

 

“그러니까 오늘날 산업문명이 고달픈 것이 경쟁과 효율을 가지고 따져 올라가기 때문에 한이 없어요. 그리고 인간도 일체가 이용의 대상인 동시에 자연까지도 이용의 대상이니까. 자연까지도 이용대상으로서 무자비하게 해오다 보니까 결과가 어떻게 되었어요? 사람이 살 수가 없게 되었지.”(1991년 4월, 한살림 활동가연수회 특강) 오늘날 산업문명으로는 사람이 살 수 없게 되었기 때문에 한살림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한살림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하나?

 

한살림운동을 하면서 꼭 지녀야할 세가지 마음을 장일순은 노자의 말을 빌어 삼보(三寶),즉 자애, 검약, 겸손을 말한다. 그 중에서 장일순이 특히 강조한 것이 자애인데, 자애는 곧 불교에서 말하는 자비(慈悲), 곧 사랑을 말한다. “그게 뭐냐. 자비인데, 이 사랑 자(慈)자는 뭐냐? 즐거움을 남에게 주는 거예요. 또 슬플 비(悲)자는 남의 괴로움을 없애주는 거예요. 그러니까 남의 고통을 함께 해주는 거지. 그럼 그게 뭘 얘기하느냐, 엄청난 얘기죠. 한살림을 얘기하는 거예요.” 이 자비에서 공생과 협동이 나온다.

 

생명은 하나이고 서로 의지하고 있기 때문에 한살림, 즉 생명을 살리기 위해서는 공생하고 협동해야한다. “생명이라는 것은 혼자가 아닙니다. 일체가 유기적인 상관관계 속에 있기 때문에 일체가 협동하고 공생하는 시대로 전환해야 하는 겁니다.”(1991년 여름, <대화>지 정현경과의 대담)

 

그리고 땅을 살려야한다고 한다. “지금 세계가, 땅이 죽어가고 있어요. 근데 여러분들이 이 일에 함께 한다는 것은 자기를 살림과 동시에 땅을 살려야지. 땅을 살리게 되면 유익한 모든 미물이, 개구리들, 메뚜기들, 거미들 모든 유충들이 거기서 우글거리고 살게 돼. 그러면서 벼를 더 건실하게 자라게 하고, 땅을 비옥하게 해 줘. 그래서 서로 환원이 돼. 자연으로 돌아가는거야.” 그래서 결국 한살림운동이란 자연으로 돌아가는 운동이라고 얘기한다.

 

“이제 한살림운동이란 게 뭐냐. ..... 얘기 중언부언 자꾸 해봐도 한도 끝도 없는데, 자연으로 복귀하는 거다, 이 말이지.”

 

한살림운동은 이렇듯 모든 개인, 모든 민족, 전 인류, 나아가 전 생태계와 우주 만물이 우주생명의 일원이라는 각성에 근거하여 이 생명을 모시고 살려야 한다는 생명사상에 근거하면서 산업문명으로 죽어가는 인류와 우주자연을 살리는 구체적인 실천내용을 담고 있다. 이러한 생명사상에 근거한 한살림운동은 1980년대 초 원주를 중심으로 싹이 터서 1989년 10월 <한살림모임>의 창립과 함께 ‘한살림선언’이 발표됨으로써 본격적으로 전개된다. 그 중심에 장일순이 있었다.

2. 장일순과 한살림운동

가. 한살림운동의 태동과 전개과정

 

장일순의 생명사상은 김지하 시인의 감옥에서의 깨달음과 만나 생명운동을 탄생시키게 되는데, 이 생명운동은 1981년 가을 김지하 시인이 초를 잡고 장일순 등 원주의 활동가들이 윤독하고 수정가필하여 1982년 상반기 완성한 이른바 원주보고서 「생명의 세계관 확립과 협동적 생존의 확장」이라는 문건에 그 철학적 기초를 밝히고 있다.

 

이 문서는 가톨릭 원주교구 사회개발위원회의 활동을 위한 문서로서 가톨릭적 언어로 새로운 운동의 전망과 방침을 제시하고 있다. ‘생명운동’이라는 개념이 문자로 기록된 최초의 문건이었다. 이 원주보고서에서는 생명의 위기와 산업문명의 위기, 그리고 생명의 질서로써 협동적 삶의 복원을 제시함으로써 한국 생명운동 담론의 원형을 제시하였다.

 

이 원주보고서 이후 장일순을 중심으로한 원주캠프에서는 새로운 운동을 위한 본격적인 학습과 토론이 전개되었고, 일본과 대만 등의 협동적 삶의 현장을 방문하여 연수하기도 하였다. 특히 1984년 박재일을 단장으로 일본의 유기농업과 생협, 공동체, 사회운동을 연수한 것은 이후 한살림운동의 태동에 큰 영향을 미쳤다.

 

이런 학습과 토론을 바탕으로 1985년 최초의 도농직거래 공동체운동 협동조합인 <원주소비자협동조합(현 원주한살림)>이 창립되는데 1986년 12월에는 서울에도 <한살림농산>이 설립되기에 이른다. 이렇게 시작된 한살림협동운동은 유기농업과 소비자가 만나는 도농공동체를 목표로 유기농산품의 회원제 직거래사업으로 시작되었는데 1988년에는 협동조합의 틀을 채용하여 한살림공동체 소비자생활협동조합으로 발전한다. 그리하여 1988년 <한살림생산자협의회>를 창립하고, 1989년까지 전국적으로 110개의 소비자공동체가 생겨나는 양적 확대과정을 밟는다.

 

이렇게 장일순과 김지하를 중심으로 생명사상이 태동하고 이것을 기초로 한 원주지역 협동조합운동의 실천경험이 쌓이면서 이들 원주의 활동가들을 중심으로 생명사상과 생명운동의 이론을 정립하여 새로운 사회운동의 기초를 세우려는 움직임이 일어나게 된다. 이들은 1년여 동안 공동의 학습과 토론을 거쳐 1989년 10월 <한살림모임>을 창립하고, ‘한살림선언’을 발표한다. 이 한살림선언에는 장일순 선생을 비롯하여 김지하, 박재일, 최혜성 등이 참여했고, 최혜성이 대표집필하였다. 이 선언의 목적은 원주보고서의 맥을 이어 생명의 세계관을 확립하고 새로운 생활양식, 즉 협동적 삶을 창조하는 것이었다.

 

이 한살림선언에서는 초기 장일순과 김지하에 의해 제시되었던 원형적 생명담론이 훨씬 체계적으로 정리되어 제시되고 그 생명사상의 실천으로서 한살림운동에 대하여 보다 구체화된 이론과 전망을 제시한다. 이 선언에서는 생명운동=한살림운동이라는 논리 하에 새로운 생명의 이념과 활동으로서 ‘한살림’을 정의한다. 이 선언에서 한살림은 ‘생명에 대한 우주적 각성’이며, ‘자연에 대한 생태적 각성’이며, ‘사회에 대한 공동체적 각성’이며, ‘새로운 인식, 가치, 양식을 지향하는 생활문화활동’이며 ‘생명의 질서를 실현하는 사회적 실천활동’이며 ‘새로운 세상을 창조하는 생명의 통일활동’이다.

 

장일순은 한살림모임 창립 이후 1994년 위암으로 작고할 때까지 생명사상과 한살림운동을 확산 전파하기 위해 여러 차례의 강연과 대담을 하고, 5차례의 서화전을 열어 기금을 마련하는 등 많은 노력을 기울인다.

 

나. 한살림세상

장일순이 한살림운동을 통해 꿈꾸었던 세상은 어떤 세상이었을까?

 

모심과살림연구소에서 펴낸 『죽음의 문명에서 살림의 문명으로』에서는 이것을 다음과 같이 말한다. “한살림운동의 전망은 한살림세상이다. 이것은 생명평화세상이라고 표현할 수도 있다. 한살림선언에 따르면 한살림세상의 구체적인 모습은 자기실현과 생태적 균형, 사회정의로 정리된다.....(중략)..... 한살림세상이란 이렇듯 세가지 목표가 더불어 실현되었을 때를 말한다. 한 사람의 삶 속에서, 혹은 지역공동체에서, 나아가 국가나 지구적 수준에서 세 가지 목표가 어우러짐으로써 새로운 차원의 세계를 열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이 한살림이 꿈꾸는 세상이다.”

 

이러한 정연한 논리적 설명보다는 장일순의 육성을 듣는 것이 좀더 생생하고 설득력이 있다. “자연 속에, 만물 속에 들어가 있는 그 생명의 나라, 끊을래야 끊을 수 없는 나라, 나눌 수 없는 나라, 그러나 그것이 전체를 절대절명으로 지배하는 나라, 그 위대하심이 길가에 피는 작은 꽃 한 송이에도 있는 그 나라!”(1991년 2월, 가톨릭농민회 제21차 대의원총회 기념강연) 이것은 일찍이 예수가 꿈꾸었던 ‘하나님 나라’이고, 최제우와 해월이 꿈꾸었던 한울세상이고, “거룩한 사람들, 사심이 없던 사람들, 욕심이 없던 사람들은 일찍이 알아들었던” 나라이다.

 

장일순이 한살림세상을 말하면서 자주 예를 드는 것이 성경에 나오는 포도밭 주인의 비유다. “성서에도 나오지요. 하루 포도밭에서 일하면 한 데나리온 준다. 아침부터 온 사람에게도, 저녁에 와서 간 사람에게도 한 데나리온이므로 아침부터 일한 사람은 더 많이 받아야한다고 생각합니다. 실제 상식적으로는 아침부터 10배 일을 하였다면 그만큼 더 돈을 주어야 하겠지요.

 

그러나 자연의 나라, 자유의 나라에서는 그렇지 않은 것입니다. 일찍 온 사람도 한 데나리온, 저녁 때 온 사람도 한 데나리온, 그러한 협동으로 좋지 않겠습니까?” “그러니까 목마른 자에겐 물을, 배고픈 이에겐 밥을 주고 엎어진 자는 일으켜주고 깨어진 자는 싸매주는 보완관계를 이루어야해요. 하늘과 땅과 세상의 돌이나 풀벌레나 모두가 하느님을 모시지 않는 것이 없으니까요.”(『생활성서』 1990년 6월호 송향숙과의 대담)

 

그러면 이러한 한살림세상을 이루어가는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

 

장일순은 예수의 “버린 돌이 모퉁이의 주춧돌이 된다.”라는 말을 인용하면서 ‘버린 돌 같은 사람’, 세상의 기준에서 보면 ‘무지렁이들이고 형편없는 사람들’이며, 말하자면 ‘버려진 사람 또는 그렇게 자처하는 사람들’이 바로 새로운 세상을 만들어갈 수 있다고 보았다. 말하자면 민중인데, 계급적 의미보다는 말 그대로 평범한 사람이다. 그래서 그는 지극히 평범한 사람들이 공생과 협동의 논리를 생활 속에서 실천하려는 생활협동조합운동에서 새로운 세상의 씨앗을 발견했던 것 같다. 그러면서도 그는 한편으로 “오늘날 문명이 우리 인간에게 이 자연에게 제대로 갈 수 없게끔 한다고 했을 적에 이 문명에 대해서 자기 스스로 벗어나는 정성이 있어야하고, 용기가 있어야 된다”라고 하여 생명적 삶을 살려고 하는 실천의지를 강조하였다.

 

- 맺으며

장일순의 생명사상은 원주 중심의 한살림생협 뿐만아니라 ‘우리밀살리기운동’, ‘우리농촌살리기운동’, 생태공동체운동, 북한동포돕기운동, 귀농운동 등으로 이어져 내려왔고, 최근에는 불교생명운동과 생명평화운동으로 확장되어가고 있다.

 

이제 ‘생명사상’ ‘생명평화’ ‘생명살림’ 같은 용어들은 사회운동에서 전혀 낯설지 않은 용어가 되었고, 점차 그 영역과 영향력을 확장해가고 있다. 더구나 2008년 미국발 금융공황으로 신자유주의 시장경제체제가 근본적으로 흔들리고, 일본의 쓰나미 재앙과 핵발전소 사고가 터지면서 더욱 실감있게 다가오는 지구적 위기상황에서 이러한 장일순의 생명사상은 더욱 주목받을 것으로 보인다.

장일순은 자신을 학자나 전문가로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에 체계적이고 논리적인 글을 쓰지 않았다. 다만 자신이 생활 속에서 체득한 지혜를 불교, 기독교, 동학의 경전들을 인용하면서 쉽게 풀어내었을 뿐이다. 그의 사상은 후학 김지하나 최혜성 등에 의해서 좀더 구체화되고 논리체계를 세우게 되었고, 최근에는 모심과살림연구소라는 연구소에서 그의 사상을 체계화하고 전파하는데 일조하고 있다.

 

사실 장일순의 사상은 본인이 말하고 있듯이 평지돌출의 새로운 것이 아니기 때문에 ‘장일순사상’이라고 이름하는 것이 안 맞다는 주장이 있을 수 있겠다. 그러나 천지창조 이후 세상에 완전히 새로운 것이 어디 있겠는가? 장일순의 생명사상은 많은 동서양 선각들의 지혜를 받아들여 한반도 현실에 적용한 훌륭한 사례로서 장일순의 독창적인 철학적 성찰이 돋보이는 사상이기 때문에 ‘장일순사상’이라고 불러도 크게 무리가 없을 것 같다.

 

앞으로 장일순사상의 연구를 위해서 우선 그의 어록과 문집을 좀더 체계적으로 수집정리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생각된다. 무위당을 기리는 모임에서 엮어 펴낸 『너를 보고 나는 부끄러웠네』(2004, 녹색평론사)는 그런 노력의 일환으로 소중한 성과로 보인다. 그렇지만 장일순의 사상적 발전과 전환에 관해서는 좀더 연구가 필요하고, 특히 1977년 새로운 운동으로 전환해야한다는 생각을 가지게 했던 배경과 관련해서 연구가 필요할 것 같다.

 

그러기 위해서는 그 시기 자료가 별로 없기 때문에 김지하 시인, 신혜성 선생 등 장일순 선생과 함께 운동했던 후배들의 인터뷰를 통해 장 선생에 대한 60-70년대 자료가 좀더 수집될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장일순사상을 연구하는 데는 생명사상의 종교적 철학적 측면의 연구와 함께 정치사상 또는 사회운동적 측면에서의 연구가 필요하다. 장일순 선생은 자신의 생명사상이 바로 현실사회를 변혁하여 생명평화세상을 이룰 수 있다고 본 것 같지는 않다. 언젠가는 이루어지겠지만 그것은 우주만물의 순환과정에서 서서히 준비되다가 아주 갑자기 도래하는 것으로 보았다. 그의 사상은 근본적이지만, 그렇기 때문에 한편으로 이상론적이고 장기론적인 성격이 강하다.

 

그래서 그가 말하는 한살림세상이라는 것도 기독교의 ‘하나님 나라’와 같이 다분히 종교적 이상사회를 의미하는 것처럼 들린다. 최혜성이 대표집필한 ‘한살림선언’은 생명사상의 과학적 근거를 마련하고 아울러 현실사회운동의 철학적 기초로 삼기위해 노력하였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엄연히 존재하는 종교사상과 정치/사회사상의 간극을 생명사상이 완전히 메꾸었다고 보기 어렵다. 바꾸어 말하면 생명사상은 이 양 측면을 동시에 가지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래서 이 장일순사상이 정치와 사회를 바꾸어가는데 어떻게 기여할 수 있으며, 또 어떤 한계를 가지고 있는지 정치사상의 측면에서, 그리고 사회운동 측면에서 고찰될 필요가 있다고 본다.

 

그와 관련하여 생각해 볼 것은 그의 생명사상이 한국의 민주주의와 어떤 연관을 가지는 것인지도 중요한 연구주제가 될 수 있다는 점이다. 그의 생명사상이 현재 한국사회가 당면하고 있는 포괄적 위기의 시대에 민주주의의 의미를 확장하고 대안을 창출하는 이념이 될 수 있다는 점에는 어느 정도 공감대가 형성되어 가는 것 같다.

 

그러나 민주주의는 미래를 창출하는 이념인 동시에 현재를 규정하고 운영하는 제도로서의 의미가 있기 때문에 현 시점에서 생명사상은 현재의 민주주의와 충돌하는 지점이 있을 수 있다. 그리고 생명사상을 국가운영원리로까지 확대적용하려할 때에는 그런 충돌이 불가피해질 것으로 보인다. 현재 녹색당 창당을 둘러싸고 대안사회운동 내부에서 벌어지는 토론에서도 이 점은 중요하게 부각되고 있는듯하다.

 

어쨌든 장일순 선생이 실제 이 문제에 대해서 당시에 어떤 생각을 가졌는지는 대체로 그의 어록에서 추적할 수 있겠지만 보다 중요한 것은 그의 전체 사상의 틀 속에서 이 문제가 구조적으로 어떻게 다루어질 수 있을 것인지는 좀더 연구가 필요한 주제가 아닌가 생각된다.

 

끝으로 6월항쟁 이후 급속하게 확대발전한 한국의 시민운동과 생명사상의 관계를 좀더 밀착하여 들여다 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환경운동, 지역풀뿌리운동, 여성운동, 생명평화운동 등에 대한 생명사상의 영향은 쉽게 확인할 수 있다. 그러나 양적으로 엄청나게 확대되고 전문화되어 있지만 급변하는 시대 속에 미래 전망을 제대로 제시하지 못하고 있는 시민사회운동에게 이 생명사상이 어떤 전망을 줄 수 있을 것인지는 아직 미지수이다.

대안사회운동을 포함하여 현재의 시민운동들이 가지고 있는 역사관, 세계관과 철학적 기초를 분석하고 생명사상과의 접합점을 찾는 것도 매우 유의미한 작업이 될 수 있을 것이다.

60-80년대 엄혹한 군사정권 하에 이 땅의 자유와 민주주의, 해방을 위해 일해온 많은 사람들이 겪었던 좌절 중에는 미래에 대한 전망의 불확실함이 있었다.

 

그리고 6월항쟁 이후 양적으로 질적으로 급성장한 우리 사회운동도 인권과 민주주의의 성장발전에 크게 이바지했지만 21세기 지구적 위기상황 속에서 한국사회의 미래에 대한 분명한 전망과 대안을 내지 못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앞으로 장일순사상에 대한 보다 깊은 천착이 필요한 이유다.

 

참고문헌

장일순, 2002 『나락 한알 속의 우주』녹색평론사

장일순, 2010 『무위당 장일순의 노자이야기』(주)도서출판 삼인

김지하, 1985 『남녘땅 뱃노래』두레신서

무위당을 기리는 모임, 2004 『너를 보고 나는 부끄러웠네』녹색평론사

김익록, 2010 『나는 미처 몰랐네 그대가 나였다는 것을』도서출판 도솔

이용포, 2011 『생명사상의 큰 스승 무위당 장일순』도서출판 작은씨앗

모심과살림연구소, 2011 『죽임의 문명에서 살림의 문명으로』 도서출판 한살림


출처 : arirang
글쓴이 : 아리랑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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